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낳은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림을 잊고 한 사람의 아내이자, 엄마로서 삶을 살았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웠고, 지쳐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과 현재의 삶이 괴로웠다.
어느덧 나는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붓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집안에서 창문에 비친 빛의 그림자에 매력을 느끼고 작업을 하였다. 나의 피폐해진 정신에 빛을 그리는 일은 그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건강을 회복하고, 외출을 할 수 있을 즈음에 산과 계곡, 바다를 가족과 거닐었다. 나는 맑고 쾌청한 날씨에 빛나는 풍경을 좋아하였고, 작업의 모티브로 삼게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빛이 비추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았다. 자연물이든 인공물이든 빛은 모든 것을 감싸기도 하며, 혹은 한곳만을 비추기도 한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결국은 사라진다. 빛은 나에게 때론 따스하게 혹은 차갑게 느껴진다. 물가에 비치는 윤슬을 지켜보고 있으면, 과거를 회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자꾸 보고 있으면 눈과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자꾸만 보고 싶고,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되어 진다.
나의 작업은 넓은 세상의 풍경을 나에게 끌어들여 다시 새로운 빛의 공간으로 구성한다. 빛이 존재하는 공간은 빛의 파장과 시간성으로 만들어진 색감의 파편으로 구성된다. 뿌리고 흘러내리고 칠한 색감의 파편은 화면에 에너지와 운동성으로 표현한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비치는, 빛나는, 겹겹이 쌓이는 빛의 색감을 얹는다. 형상의 변화를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패턴들에 흥미를 느끼고 그린다. 둥둥 떠다니는 나의 기억, 생각, 오감의 감각들이 색감의 파편으로 자리 잡는다. 형상을 바라봤을 때 느껴지는 감정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빛이 변화로 표현하면 무수히 많은 단계가 만들어진다.
유화 물감을 이용하며 반복적 패턴을 그린다. 또한 자연스럽게 뿌리고 흘리고 칠하며 우연적인, 자연스러운 기법이 추상으로 연결되고 본인의 호흡과 만난다. 가까이서 보면 화면의 추상적 표현과 멀리서 보면 화면의 구상적 표현들이 흩뿌려지는 색채들과 요동치는 색감들로 현실을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닌 예민하게 비치는 어떤 현상이나 기운이 은근하게 드러나 보인다. 뿌리고 흘러내리는 행위는 그림과 그림 사이를 연결해 주고 딱딱한 형태를 풀어 내리는 재미를 주는 조미료 역할이다. 뿌려진 물감의 파편들은 빛의 입자이기도 하다.
나의 작품은 따뜻함, 차가움, 싱그러운 햇살, 풍경 속 빛이 화면에 스며든다. 실제의 풍경을 재현하면서 첫 풍경의 감정 기억이 반복되고 평면화, 입체화되어 작품 형상이 된다. 나는 나의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껴지는 빛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평면의 작업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과 입체적인 율동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빛에 의해 생기는 운동성, 생명성, 율동성을 기억하고, 그 기운과 아우라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